정대균 ( 鄭大均수도대학도쿄 명예교수 )
Japan Forum for Strategic Studies, Vol.69, July 2016.
두 가지 욕망
지금은 고인이 된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가 말한 <두 가지 욕망> 이란 것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한 <신흥국(new state)>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 개의 욕망(동기)에 동시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 두 욕망 사이에 좋은 긴장관계가 유지될 때는 국가 발전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지만, 두 욕망은 때로는 대립하는 것이어서 그것이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최대의 장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두 개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하나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존재, 이름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능력있고 활력있는 현대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전자가 하나의 버젓한 국가로써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싶다는 자기주장이라면, 후자는 국민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 효과적인 정치체제를 만들어 사회정의를 확대하고자 하는 실리적인 욕망이다. 본고에서는 전자를 '자존심의 욕망', 후자를 '실리적 욕망'이라 부르기로 한다.
<종합적 혁명(統合的革命)> (『문화의 해석학(文化の解釈学)』岩波現代選書所収, 1987년) 이라는 제목의 논고에서 기어츠가 염두에 두고 있던것은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의 아시아・아프리카국가들인데, 두 개의 욕망은 두 가지 이유에서 심각한 만성적 긴장관계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하나는 사람들의 자의식이 혈연과 인종, 지역, 언어, 종교라는 <원초적인 감정(primordial sentiment)>과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집단의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독립 국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어츠의 논고가 발표된 것은 1963년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많은 독립국가가 탄생하여,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될 시기에 쓰여진 것이다.
기어츠의 논고를 필자가 접한 것은 80년대 말,한국에 살고 있을 때인데 <원초적 감정> 이라는단어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것을 소재로 재미있는한국론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루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그 논고도 잊고 있었다.지금 다시 논고를 읽고 드는 생각은, 한국은 많은 신흥국들과는 달리 민족적, 언어적 균질성이 있다는 것과 두 개의 욕망 사이에 좋은 긴장관계를유지하여, 그것을 이 나라 발전의 추진력으로 만든정치지도자들의 현명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능력있고 활력있는 현대국가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아니다.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인 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국가의 정치지도자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상황은 부러워할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의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이 한 명도 없다는 상황을 다른 신흥국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 어떤 언 어를 국어, 공용어로 선택할 것인가는 신흥국들이독립할 때 고민한 문제들이었고, 어떤 언어로 정해진다 해도 그것은 어떤 집단에게는 <이방인>의언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정치자들에게 아무런 시련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문화,전통과의 갈등, 정적들과의 갈등이 있어서, 얼핏보기엔 축복받은 것 처럼 보이는 조건도 사실은 화를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원초적 감정과의 결합
그런 한국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려 하고 있다.변화를 일으킨 것은 신흥국에서 흔히 보이는 <국론 분열> 과는 반대인 <국론 통합> 이라는 상황인데 이것은 민족적 균질성, 언어적 균질성을 특징으로 하는 나라에서 <원초적 감정>이 강조될 때 어떤일이 일어나는가를 알려주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원초적 감정이 많이 나타나는 신흥국에서는 <국론 분열>이 일어나는데 왜 한국에서는 <국론 통합>이 일어나는가. 한국에서는 국민국가의 아이덴티티로써 원초적 감정이 강조되어도그것이 다른 집단의 원초적 감정과 경합하거나, 대립하는 상황이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많은 신흥국에 있어서 원초적 감정의 강조가 국민의 감각과 갈등을 일으켜 사회적 혼란이나 피폐를 초래한다는 경험이 자국의 아이덴티티로써 인종, 부족, 언어, 종교 등을 공공연히 주창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데 비해, 그러한 실패가 일어나기 힘든 한국에서는 오히려 원초적 감정의 주창이 선호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원초적 감정의 주창은 <국론 통합>을 이끌어내는 방법이기에 정치가도 미디어도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상황은 이것과 비슷하면서도다르다. 일본도 민족적 균질성과 언어적 균질성을특징으로 하는 국가이며, 일본인에게 민족적 나르시즘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국의 아이덴티티를 말할 때에 원초적 감정을 끄집어 내는 것은전후 일본에 있어서는 금기시 되었고, 그것이 원초적 감정에 대한 억지력으로써 작용하고 있다.
두 나라의 차이는 역사적 문화적 요인을 제외하면,양국 사이의 작은 조건의 차이에서 유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에는 소수이긴 하지만 소수민족 그룹이나 외국인 집단이 있어서 그 존재가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오키나와나 아이누의 존재도 중요하지만, 전후 일본에 있어서는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이 내셔널리즘 비판자로써의 역할이 컸다. 이러한 상황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민족>적인 나르시즘을 이야기해도 그것에 의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거나,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집단이 존재하지않는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라 할 수 있는 북한과 비교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데, 북한은 일찍부터 원초적 감정이 <자존심의 욕망>과 결탁하여, 세계에서도 유례를 보기 힘든 <자기애(自己愛)적 국가>를 만든 예이다. 그런 국가와 비교한다면 한국 내셔널리즘에는 건전한 면이 있고, 자기억제적 성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찌기 두 개의 욕망 사이에 좋은 긴장관계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하나로 결합된 형태로 변질되어 한국의 장래에 불안을 더해주고 있기 떄문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 한국인의 자기의식은 <혈연>이나 <민족>이라는 원초적 감정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데,그것은 특히 <반일(反日)>을 매개로 하여 환기되기 쉽다는 것, 둘째, 민족적 균질성이 특징인한국에서는 원초적 감정이 공개적으로 주창되어도그것에 의해 자존심이 훼손된다고 느끼는 집단이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세번째로 원초적 감정은 보통 <국가>를 단위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때때로 북한을 포함한 <민족>을 단위로 언급되며, 그 경향은 최근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아이덴티티의 변화
그러면 한국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것인가. 여기서는 '반공국가에서 민족국가로' 라는 국가 아이덴티티의 변화에 주목하고자 한다.
<반공 내셔널리즘>이 북한과의 이질성을 중시한다고 한다면, <민족 내셔널리즘>은 반대로 동질성을 중시한다. 전자가 <민족>(nation)보다 <국가>(state)를 중시한다고 한다면 후자는 <국가>보다 <민족>을 중시하는 태도이며, 민족과 국가는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공 내셔널리즘>이 북한에 대한 남한의 우월성, 다시 말해 민주주의나 법치주의, 사상 신조의 자유를 중시한다고한다면, <민족 내셔널리즘>이 중시하는 것은 국가의 <정통성>인데, 일제통치기에 항일무장투쟁을전개한 북한에는 한국보다 <민족>으로써의 <정통성>이 있고, 또한 한미동맹은 미국에 의한 한국의 주권침해이자 민족분단을 고착화시킨다고 생각하는 사고이다.
<반공 내셔널리즘>과 <민족 내셔널리즘>의 공방은 한국의 역사이기도 한데, 오랫동안 우위에 있었던 것은 <반공 내셔널리즘> 이었다. <반공 내셔널리즘>은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에 널리 공유되어 있던 이데올로기이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대항이 가장 우선시 되었던 냉전시대의 규범화된 이데올로기였지만, 차차 한국이 부유해지고 국력이 커지면서 북한의 위협에 대한 감각이 급격히 쇠퇴하여 <반공 내셔널리즘>은 힘을 잃게 된다.
93년 대통령에 취임한 김영삼이 취임 연설에서말한 "어떤 동맹국, 사상, 이념보다 민족이 중요하다" 라고 말한 것은 <민족 내셔널리즘>의 시대의서막을 알리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는 해도 낡은 시대의 관점과 가치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 다. 두 내셔널리즘의 공방은 오늘날의 한국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일찌기 <반공 내셔널리즘> 이 반공법과 반공주의에 의해 비호를 받았던 것 처럼, 오늘날의 <민족내셔널리즘>도 새로운 시대의 규범에 의해 비호를받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공 내셔널리즘>은 오늘날에는 민주화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여져, 시대착오적이고 비도덕적인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반공 내셔널리즘> 시대의 한국은 군사 정권의시대였기에, 그 사회와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반공 내셔널리즘>에는 일종의 내셔널리즘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어서, 그 원초적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억제하고 신흥국으로 출발한 한국이합리적이고 활력있는 현대국가로써 성장하는 것을가능케 한 공적이 있다는 것은 평가되어도 좋을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반공 내셔널리즘>의 시대에 유지되고 있던 <반공>과 <반일>의 관계에 변화를주고 있는 듯 하다. <반공>의 쇠퇴는 <반일>을활성화 시키지만, 그것은 일본에 대한 적의와 증오를 환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는 당연히 악화된다. <반공 내셔널리즘> 에는 <반일>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었고, 그것은 한국이 원초적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은 오랫동안 반일을 표방하면서도 활력있는 현대국가 건설을 위해 일본을 적절히 이용해 온 나라 였다. 한국은 그 발전과번영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과 기술을 일본으로 부터 들여오는데 여념이 없었고, 일본인도 거기에 협력했다.
그런 한국이 반일노선을 선명히 한 것은 2005년3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한 대일역사전(대일외교전쟁)의 선언이다. 이 선언에서 대통령은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또 다시 패권주 의를 관철하려는 (일본의)의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됐다"고 언급하고, 거액을 들여 동북아역사재단을 설치하는 한편, <독도> 와 <위안부>를 테마로 일본을 비난하는 외교전을 개시하여, 그것은 이후 한국 정권에도 계승되었다.
한국을 보며 드는 생각
근래 한국에서 보이는 것은 일본통치기(1910~45)의「악의悪意」와「악정悪政」이 학교 교과서를 통해 교육되고, 박물관이나 기념관에 전시되며, TV로 재현되는 과정에서 리얼리티를 얻고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한국인에게 행복한 상황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한국의 역사는 지금은 너무나 정치적이고 집단적이어서 적과 싸우는데에만 열정을 기 울일 뿐, 스스로와 싸우는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행복하게 할 리가 없다.
이웃나라의 국민심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태도 역시 도를 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가해자와피해자>의 관계이므로 고발, 규탄하는것은 한국측이고, 반성해야하는 것은 일본인이라고 하는 것이근래의 한국 언론과 정치가의 주장인 듯 한데, 그런 주장을 납득하는 일본인은 현재 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웃나라에 분노하고 있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는 것을 한국 언론은 국민에게 확실하게 전달할 의무가 있다. 분노하는 일본인이라고 하면 바로 <혐한일본인>, <일본우익>이라고 비난을 하는것이 근래 한국의 나쁜 경향인데, 그것은 현실을 감추고, 축소화 하는 것이다.
평소, 한국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두 가지만 말하고 마치려 한다. 첫째, 일본에 의한 조선통치가 한국인에게 굴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해방 후 한국은 그 감정을 강장제로써 부흥을 이루었고, 부유한 나라를 만들어 냈으며, 거기에는 일본도 협력했다. 이것은 일찌기 침략자와 피침략자가 전후(戦後)에 달성한 유례를 찾기 힘든 업적이며, 양국이 공유할 수 있는 역사인식 중에 이 이상의 것은 찾기 힘들다.
둘째,한국이 주장하는 순결한 피해자나 용감한 저항자라는 역사인식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더 자신감 넘치는 나라로 만드는 한편, 점점 한국을 단조로운 나라로 만들고 있다. 역사를 집단적,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한국인을 보고 있으면 일란성 쌍둥이인 북한을 떠올리곤 한다. 일찌기, 역사를 논할 때,개성과 다양성이 넘치던 그 한국인의 모습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